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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미안

한강에 살고 싶다. 래미안에 살고 싶다. 한창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다. 그때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한강이 보이는 집이었다. 아침에는 약간 뿌~연 안개가 끼인 한강을 보고 싶고, 낮에는 활기찬 한강을 보고 싶고, 밤에는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찬 한강을 보고 싶었다. 조깅도 하고, 한강유람선도 타고, 겨울에는 썰매장도 생긴다. 매번 한강을 지나면서 한강에 한번쯤 놀러와야지.. 하면서도 한번도 그곳에서 머물어 본 적이 없다. 이런 추운 겨울에는 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예전에는 한강이 꽁꽁 얼어서 이곳을 걸어다녔지~" 그 풍경이 과연 장관이었을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꽁꽁 언 한강을 걸어다니는 모습! 한강은 우리에게 과거이자, 현재이고, 미래인것 같다. 한강과 함께 발전해 온 서울 그만큼 한강은 우리에게 많.. 더보기
던킨도너츠와 함께 즐거운 오후~* 예전 한 2달정도 됐나? 래미안에 관한 글을 포스팅한 적이 있었다. 그 선물로 던킨도너츠 교환권을 받았다. 커피와 도너츠 한개 하지만 친절한 언니께서 도너츠 3200원어치를 사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도너츠를 세개 구입했다. 워낙 고가의 도너츠라 세개밖에 살수 없었다. 하지만 맛은 역시 최고다!! 아.... 커피랑 같이 먹었으면 진짜 최곤데....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래도 우리 식구 셋이 하나씩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우리 건희 입맛에 맛는 딸기 도너츠를 사줬더니 신나서 먹는다. 입에 하얀 가루 열심히 묻혀가면서 말이다. 요새 매니큐어 바르는 거에 푹 빠져서 시간 날때마다 눈에 매니큐어가 보일 때마다 발라 달라고 한다. 근데 꼭 바르.. 더보기
그곳에 머물고 싶습니다. 이제 고생끝 행복시작이다. 물론 지금도 행복하지만, 집에 대한 서러움은 정말 어쩔 수가 없나보다. 결혼하고부터 지금까지 월세를 전전하다 보니 월세나가는 것도 부담되고, 내집이 아니기 때문에 꾸미기도 힘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집에 대해 소홀해질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집이 생긴다. 내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우리집!! 마음 편한 우리집!! 역시 든든한 집이 있어야 안정이 되는 것 같다. 우리 애기한테도 더이상 이집 저집 옮겨다녀서 우리집을 못찾는 아픔을 주기는 싫다. 집의 의미는 더이상 의식주를 해결하는 곳이 아니다. 내 가족이 생겼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내 아이와 남편과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개인주택을 꿈꿔보지만, 워낙 비싸니깐.... 험험~ 또한 좁은 땅에 많은 .. 더보기
우리집에 왜 왔니? 싱글일때는 나의 주거공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독립성이였다. 나를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요소가 없는 독립정인 공간을 원했다. 두번째 부분은 편리성이였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공간, 내가 이사를 하더라도 불필요한 짐이 필요없는 그런 시설, 그것이 갖추어져 있어야 했다. 그래서 오피스텔을 선호했었다. 물론 그곳에 공원같은 곳이 인접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주거공간에 대한 눈이 달라졌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자연환경이 되었다.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더더욱 이 점을 신경 안 쓸수가 없다. 요즘에는 아토피다, 천식이다, 비염이다, 이것은 국민질병이 되어버릴 정도로 아이들 사이에선 흔한 질병이다. 이것이 흔한 질병이 될수밖에 없는 원인은 바로 자연환경이 나.. 더보기
항상 머물고 싶은 곳은 우리집입니다. 옛날부터 집은 중요한 곳이였다. 내가 어릴적에는 집이 없었다. 남의 집에 셋방에서 온가족이 살았었다. 하지만 우리 아빠와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내가 철이 들기전에 우리동네 제일 꼭대기에 근사한 집을 지으셨다. (집에서는 작은 놀이도 항상 신난다.) 나는 그 집이 너무 좋아서 학교에서 30분이 넘게 차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우리집에 아이들을 초대하곤 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서 집에서 멀리 떨어져 4년동안 자취생활을 했다. 자취생활을 하면서 나름 예쁘게 꾸며놓고 살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은 집에 가서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곤 했다. (친정집은 마당이 넓어서 철마다 마당에는 무언가 한가득 말리곤 한다.) 그리고 내려갈 때마다 나는 아빠에게 "나중에 이집 나줘"라는 철부지 소리를 하곤 했다.. 더보기